생각하며 살아가며

작성자 이요나(admin) 시간 2024-03-07 16:43:50 조회수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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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페러다임

 

(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9장에서 살펴야 할 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의식전환의 필요성이다. 똑같은 것을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이다. 그 첫 번째가 중풍병자이다. 주님은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을 때,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2) 하셨다. 이를 본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신성모독을 하는구나생각하였다.

 

이때 서기관들의 악한 마음을 보신 예수님은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물으셨다. ‘죄사함이란 종교적 관점이고, ‘일어서라는 치료의 관점이다. 다시 말하여 주님은 중풍병의 원인을 죄로 규정하신 것이고 사람들은 일반적인 질병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도 질병이 낫기를 원하지만 죄사함을 받으려 하지는 않는다. 어느 것이 우선순위인가?

 

두번째 단락에는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인에 대한 복음의 관점과 율법의 관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주께서 마태에게 나를 따르라부르심에 마태는 망설임 없는 순종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영광스런 천국의 상속자가 되었다.

 

마태는 기쁨을 감당할 수 없어 예수님을 초대하여 식탁을 베풀고, 평소 자기와 함께 하던 세리와 죄인들도 초대하였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에게 너희 스승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느냐시비를 걸었다. 유대인이 죄인과 식탁에 마주 앉는다는 것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에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12) 하시며,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2)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종교는 사람의 행위를 따라 죄인으로 정죄하지만, 복음은 죄인된 사람을 구원함에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14절에는 금식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주께 나아와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14)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에 주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15) 답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의식적 금식의 허구를 지적하신 것이다.

 

이에 주님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17,18)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종교개혁의 무가치성을 언급하신 것이다.

 

교회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교회의 모순점을 개혁하려 애를 써 왔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교회 개혁을 통해서 온전함을 이룬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교의 전통을 보완하여 개혁을 시도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으로 출발하셨다.

 

18절부터는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의 발견과 혈루병 여인의 구원의 믿음에 대한 기록과 귀신들려 벙어리 된 사람과 소경을 고치신 일들의 내용이다, 이 일들에 대하여 마태는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35) 기록하였다.

 

끝으로 주님은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보시며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37,38) 당부하셨다. 오늘날도 해마다 많은 신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주의 뜻대로 부름을 받은 자들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요나 목사)